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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은 북 커버 디자인 컬러가 매력적이다. 무궁화색 배경과 제비꽃색과 회보라색 사이 타이틀 컬러를 메인으로 한 커버에서 왠지 모르게 익숙한 네이버 건물이 보이는 듯하다. 10년의 직장생활을 IT 회사의 기획자로 일한 작가의 인터뷰로 짐작하건대, 판교와 닮아 보이는 일러스트는 착각이 아닌 듯하다.

 

8개의 단편집으로 이루어진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장류진이라는 이름은 낯설었으나 책의 표지와 이름은 익숙했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지에서 자주 출몰했기 때문이다. 표지의 아름다움 때문이었을까? 제목이 주는 공감이 강해서였을까?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건 사람들의 선택에 이유 중 8할은 책 안에 내용이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단편집의 장점이 있다. 바로 하나씩 끊어 읽는 재미가 있다. 단편집 특성상 모든 소설이 하나의 메시지를 말하거나 똑같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문득 하나씩 꺼내먹는 재미가 있다. 아, 꺼내 읽는. 그래서 나는 단편집을 사면 한 번에 읽기보다 시간에 걸쳐서 한 편씩 읽는다.

 

이 책 또한 그랬고, 그러다 보니 각 편별로 느낌이 달라서 좋았다. 그 날에 주는 기쁨과 슬픔이 모두 다를 달까?


#1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

소설은 우리를 다른 세계로 데려가서 나와 전혀 다른 상황에 있는 인물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만듭니다.

해리 포터에게도 공감하게 만들고, 엘사에게도 공감하게 만들고.. 이게 중요한 이유는 결국 소설 속 주인공에 대한 공감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이해하게 됩니다. 소설을 보다 보면 문득 자신의 모습이 소설 속에 있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김영하-


나는 이 말을 매우 공감하고 또 좋아한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공감력이 없다고 느껴지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저 말을 떠올리게 된다. 저 사람은 소설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저 분에게는 소설책을 읽어보라고 권유해볼까? 그때마다 자연스레 머리에 저런 생각이 든다.

 

소설의 매력은 묘사고 묘사는 우리에게 상상이라는 동물적 감각을 불러온다. 상상을 통해 우리는 이미지를 그려내고 생각하고 자연스레 몰입하고 공감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단편집 <잘살겠습니다>에서는 결혼식에 초대해달라고 밥도 얻어먹고 청첩장도 받아갔지만 정작 결혼식날 오지 않는 직장 동료 빛나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욕을 했다. 불편한 맘으로 선물한 바닐라향 핸드크림을 빛나는 눈물로 받고 기쁨의 포스팅까지 올리는 걸 읽었을 땐 왠지 모를 패배감까지 느꼈다.

 

또 <일의 기쁨과 슬픔>의 거북이알은 스타트업에서 진성 고객 유치가 얼마나 힘든 일인데 의심을 해? 하며 거북이알의 편이 됨과 동시에 안나의 스트레스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동료 마케터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치듯 지나가는 건 덤이었다.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속 밀당은 나와는 관계없는 일임에도 웃음이 터졌고, 권투 경기의 심판이 되어 지유의 오른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승자는 지유입니다.


#2

소설은 도끼다.

 

<책은 도끼다>라는 책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광고 디렉터이자 작가인 저자는 책을 얼어붙은 우리 생각을 깨주는 도끼에 비유했다.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라고 불릴 정도의 열풍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이미 <책은 도끼다>를 넘어 어 <다시, 책은 도끼다> 까지 나왔으니 말 다했다.

 

표현을 빌려오자면 나는 소설이야말로 딱딱한 우리 마음을 깨는 도끼 같다고 생각한다. 작가들의 친절한 묘사를 읽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고 그 시대로 그 상황으로 그 순간으로 들어간다.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나와는 다른 사람의 상황을 읽으며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생전 가본 적도 없는 나라의 묘사를 통해 마치 네덜란드 길거리의 한 복판에 서있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때로 너무 재밌게 읽은 책 한 권이 가족이나 동료보다 가깝게 느껴질 때가 있다.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서유미-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처음으로 책의 묘사가 현실적이다 못해 참담하고 무서워 덮어버렸고, 김애란 작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을 읽으며 웃음과 울음을 반복했다. 김연수 작가의 <스무 살>을 읽으며 과거의 내 모습을 떠올렸고, 부끄러웠고 애틋했다.

 

이처럼 소설은 우리의 마음을 깨는 도끼이자 녹이는 따뜻한 봄빛 같다.


#3

외로움과 기쁨과 슬픔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챕터로 남은 작가의 말을 읽어 내려갔다. 몇 줄 안돼서 나는 그만 놀라고 말았는데 이유는 한 문장 때문이다.

여기에 실린 소설들은 모두 회사에 다니는 동안 발표한 작품이다.


나이가 들고 시간이 흐르면서 가장 갖고 싶은 능력 중 하나는 바로 꾸준함이다. 꾸준함은 시간의 연속성과 만났을 때 복리로 결과가 만들어진다. 그런 결과를 만든 작가는 소설이 자신에게 탈출구이자 위로의 순간이었음을 말한다.

소설을 쓰는 일 그건 내 오래고 오랜 비밀이었다.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이상하게 부끄러웠다.

소설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동안은 늘 누군가 내 귓가에 대고 '네가 무슨 소설을 써? 소설 쓰고 있네..."라고 속삭이며 하하 웃곤 했는데 그건 슬프게도 나였다. 그래서 절친한 친구나 가족에게조차, 소설을 쓴다는 사실을 꼭꼭 숨겨왔다.

.. 이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내가 자초한 일이면서도 한없이 외로웠다.


8편의 소설을 다 읽고 나자 작가의 말이 더 와 닿았다.
나 역시 누군가 나에게 네가 무슨 디자인을 해라는 말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그건 바로 나 자신이지만, 부끄러움과 왠지 모를 낯섦이 늘 나를 괴롭혔다. 결과물로 자신을 보여줘야 하는 직업은 그래서 괴로운 것 같다. 나 또한 작가의 마지막 말에 큰 위로를 받는다. 부끄러움을 해결하는 건 결국 자신이고, 결과물이고, 꾸준함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으로서는 정말, 계속해보겠다는 마음, 계속 써보겠다는 마음, 그 마음밖에는 없다.

그게 무엇이든 계속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소설을 읽자. 꾸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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