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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소설을 읽다가 스스로 덮은 채, 책을 저 멀리 던져버리고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 어찌할 줄 몰랐던 적은 처음이었다.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해 더는 읽어나갈 수가 없었다. 사실을 토대로 쓰인 소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읽고 나서 깨달았지만 알고 있다고 생각한 사실을 나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무엇이고 왜 시작이 되었으며 얼마나 잔인하게 이루어졌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가슴의 답답함은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읽다가 덮기를 반복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너무나 사실적인 묘사에 읽으면서 머리 속에 펼쳐지는 광경은 감당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니였다. 어린 아이의 혼이 내 옆에 있는 것 마냥, 내 뺨이 맞은 것 마냥, 우리 엄마가 나를 걱정하는 것 마냥, 사실로 다가오는 글이 너무 두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읽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역사적 사실과 고통이 주는 괴로움을 마주봐야 하니까.
책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지만 작가가 어렸을 때 보았던 한 사진 속 아이때문에 이 소설은 시작된다. 어렸을 때 보았던 민주화 운동의 사진 속 그 아이가 얼마나 오래 가슴에 남아있었을까? 어쩌면 어렸을 적부터 소설을 쓸때까지 매일 매일 고통의 현실들을 마주했을지도 모르겠다. 흘려드는 말로 들은 아이의 이름도 그 순간 잊고 싶어도 못 잊는 이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작가가 느끼고 경험했던 고통의 시간들을 소설에 담아냈기 때문에 읽는 나도 이렇게 괴로운걸까? 작가의 인터뷰에서 그런 뉘앙스를 느낄 수 있었지만 알 수는 없다. 내가 매일 웃고 있어도 어딘가에선 내가 알아야 할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 무섭다.
소설책을 읽었지만 내 안에 남는 건 답답함과 슬픔뿐이다. 이 감정이 민주화운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역사적 사실을 바로 알기 위해 공부하고 자료를 찾아보는 행동으로 옮겨졌다는 것에 놀라울 뿐이다. 소설이 소설로 끝나지 않고 독자에게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에 특히 놀랍다. 나로서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니까-
30대에 들어서야 정치에 시대에 사실에 사회에 약자들에 관심을 두고 있는 내가 때로는 우습다. 또 다른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관심 있었냐고 비웃는다.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사실에 근거한 공부와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가짜 뉴스가 판치는 요즘 사실이 무엇인지 눈과 귀를 크게 뜨지 않으면 모르는 세상이다. 누군가는 민주화운동을 폭도들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최종 명령권자였던 사람은 자신도 피해자라며 사실을 피해간다.
국가란 무엇인가.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돈 쓰는 것을 낭비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에게 국가란 무엇이기에 그토록 우러러보는 것인지.
우리나라는 지금 변곡점에 있다. 그동안의 민주주의를 넘어서 새로운 민주주의 형태로 발전될 것이다. 그 변곡점에서 나는 정치와 나라, 사회의 고통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이것이 앞으로 남은 나의 삶의 방향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억울한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억울한 사람을 안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빛나지 않더라도 아프게 하는 사람은 아니고 싶다. 그렇게 살고 싶다.
-한강 작가의 다른 책들을 모두 읽을 생각이다. 고통을 마주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또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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